라클렛 앤드 클라렛
Raclette & Claret
2014년 연말에는 바깥 송년회를 제외하고 두 번의 저녁 초대가 있었다. 친한 친구 가족과 한 번, 그리고 동생의 친구들과 한 번 이었다. 벌써 한 달이 다 된 일이다.
재료를 썰어 가지런히 준비하면 끝인 라클레뜨에 몇 년 전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 옆에서 사먹은 버섯 요리를 흉내내 보았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디저트는 대망의 몽블랑. 머랭도 샹티이도 밤크림도 어려울게 없어서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다 따로 준비해야하니 의외로 품이 많이 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휘핑이 어찌나 힘들던지. 키친 에이드든 켄우드든 빨리 하나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역시 비싸고 무거운 재료들을 아끼지 않은 몽블랑은 맛있었다. 다들 좋아해 나중에 간식으로 먹으려고 냉장고에 남겨 둔 것들까지 금세 동이났다. 역시 겨울에는 밤. 이제 매년 겨울에는 밤 파운드와 몽블랑을 만들어야겠다.
음료로 준비한 뱅 쇼는 생각보다 인기가 덜했지만 연말 분위기를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호사스럽게도 프랑스산 와인으로 끓인 뱅 쇼였는데,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프랑스 와인을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사연인 즉, 마트 두 군데에 평소 다니지도 않는 코스트코까지 뒤졌음에도 사려고 정해두었던 팩 와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마트 와인코너의 전혀 사고 싶지 않은 대용량 와인들 앞에서 길 잃은 어린 양이 된 나는 묶음할인에 들어간 심플리 시리즈의 클라렛을 발견했고 또 다시 긴 갈등 끝에 그것을 카트에 담았다. 그것도 묶음 할인이니 여러 병을. 클라렛Claret은 영미권에서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무려 라벨에 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프랑스 산 와인'이라는 출신 성분 외에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차피 끓여먹을 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난 뱅 쇼도 프랑스산 포도주로 끓여먹는다, 우아나 떨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뱅쇼가 생각보다 안 팔린 탓에 이 클라렛은 아직도 우리집에 잔뜩 남아있다. 덕분에 신년 첫 초대 메뉴는 꼬꼬뱅이나 부르기뇽 - 을 보르도 와인으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으로 해야할 판이다.
편안하게만 지내고보니 아쉬움이 가득한 2014년이었다. 별 다른 진척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 신년은 좀 더 생산적인 한 해여야지,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나마 돌아보니, 재작년에 결심했던 계절별 손님초대를 빼먹지 않고 한 해를 마무리 했다는 것이 작지만 분명한 기쁨으로 남았다. 2015년은 편안한 일상보다, 괴롭더라도 더 큰 보람과 결실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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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u winter
2014.12.21
2014.12.24
Madrid mushrooms
마드리드 버섯
Raclette
라클레뜨
Vin chaud
뱅 쇼
Mont blanc
몽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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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에 응해준 나의 친애하는 손님들,
JM Lee & JYR Yoon
JH Lee
Une Petite pomme
GS Ko
JJ Yoon
Mer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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