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ignet'에 해당되는 글 29건

  1.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 2014/02/17
  2.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 2013/10/18
  3. 잡동사니 (5) 2013/03/19
  4. 하루키 잡문집을 읽다가 2012/09/29
  5. 왜 안돼? 2008/12/21
  6. 야밤의 하이쿠 잡담 2008/12/15
  7. [5월의 책읽기] 폭풍 5월 2008/06/02
  8. And so on 2008/05/24
  9. This is just to say 2008/05/22
  10. _ short conversations 200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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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안삼환 옮김
민음사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대한 관심은 한 장의 판화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그날그날 일정을 만들어 움직이던 나는 문득 비엔나에서 읽은 어느 칼럼 내용을 떠올리고 케테 콜비츠 미술관에 들리기로 결심했다. 나란히 자리한 베를린 문학의 집 내 겨울정원Wintergarten’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들린 그 미술관은 그 누구와 마찬가지로 나를 맞이해 샘물을 퍼주듯 소탈한 손길로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흥이라는 단어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종의 따뜻한 깨우침에 나는 부끄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 가운데 위의 판화 씨앗에 쓸 밀은 빻아서는 안된다 Saatfrüchte sollen nicht vermahlen werden가 있었다. ‘Seed Corn Must Not Be Ground’라는 영문 제목을 메모해두었다가 찾아보니 괴테의 작품에서 발췌된 문장이었다. 귀국하면 곧 찾아 읽기로 결심했다. 내게 그토록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한 후에, 콜비츠는 나를 괴테에게로 이끌어 준 것이다.

 

독일 문학에 문외한인데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문학사적 의의나 교양소설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줄곧 이 작품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애시대정도로 생각했다. 세계문학이라는 범주 안에는 참으로 많은 남성 연애 편력기가 있구나, 즐거워하며 이걸 다 읽으면 오래전에 읽다 만 겐지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쉬운 남자 빌헬름의 연애는 릴레이 계주 마냥 계속된다. 그러나 그가 연극에 본격적으로 투신하는 중반부에는 '햄릿' 을 읽고 싶어졌다. 빌헬름이 오합지졸 단원들을 모아놓고 햄릿에 대해 열정 충만한 해석을 늘어놓는 부분에서 기억 저편 학부시절 문학의 언저리에서 맛보았던 즐거움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얇게 잘라 만든 스티커를 붙여가며 후반부를 읽는 동안에는 괴테를 비단 소설가라 칭할 수 없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초중반부 부터 빌헬름이나 그 외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인간 군상에 대한 괴테의 성찰에서는 이미 재주 있는 이야기꾼, 재능있는 작가의 경지를 넘어선 현인의 면모가 엿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괴테의 장기자랑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막바지에 이르면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출생의 비밀이 숨막힐듯 전개되어 막장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말초자극이 연타로 찾아오니, 무려 4세기동안 책을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흥행력에 탄복할 따름이다. , 하나 잘하는 놈 다 잘한다더니, 미남인데다 머리 비상하고 능력 있고 풍류도 알면서 명까지 긴 이 말도 안 되는 남자는 왜 18세기에 태어난 것인가. 아니 도민준도 사백 살이라면서, 어딘가에서 천송이 같은 여자와 여전히 연애 중이신가. 그런 건가 괴테도.

 

그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장을 덮고 보니 다음으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영 모르겠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다만 파고 또 파도 공부할 거리가 나오는 이런 바이블 같은 작품은 일자무식 문외한도 밀쳐내는 법 없이 무언가 하나쯤은 들려 내보내는 법이니, 마지막으로 얻어 걸린 키워드는 교양소설이다. 독일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소설 유형으로 개인의 자아형성과 사회 통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소설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는데, 그중에서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교양소설의 본보기라니 나 이런 책 읽었노라 뽐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비루한 힙스터들마저 끌어안는 넓은 가슴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유리알 유희역시 교양소설의 대표작에 속하나니 바야흐로 나 빼고 모두가 읽었다는 헤세에 손을 댈 때가 오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책 밖 일상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얼마 전부터 몹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하나 얻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삼년은 관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랄라랄라 다니는 중인데 최근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남성 갱년기 증상으로 동료들을 들들 볶아 행복한 나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도 없다 불똥을 맞고 보니 발걸음도 가볍던 출근길이 순식간에 보통 출근길이 되어버렸다. 본래 우울이란 게 몇 방울이라도 한 번 물이 들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건만 빨아서 아무리 야무지게 짜내도 영영 깨끗하게 빠지지 않을 것만 같다. 무언가 그런 분위기가 이어져 영 심기가 불편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읽은 괴테의 일생과 파우스트에 대한 칼럼은 그런 내 감정의 얼룩을 한방에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천재의 빼어난 일생과 빼어난 업적은 범재를 좌절하게만 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햇볕과도 같다. 그런 절대 우위의 본보기가 어슴푸레한 속을 침울하게 더듬는 범인의 마음을 밝혀주기도 하는 것이다. 볕은 만인의 머리 위를 비추고 머리카락 사이의 곰팡이를 털어주며 비타민 D도 보충해준다. 고전은 그런 존재이기에 의지해 살 만한 것이다.    

2014/02/17 15:11 2014/02/17 15:11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신유희 역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였다. 매 년 한 권에서 두 권 정도 번역되는데, 귀국해보니 신간 두 권이 밀려있었다. 넉넉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열 여덟 무렵부터 시작해 10 년 넘게 에쿠니를 읽어왔다. 알게 모르게 내 생활과 취향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솔직히 도스토예프스키나 괴테에 매혹되어 십 년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더 괜찮은 젊은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지나고 보니 10년이다. 그리고 나는 가볍고 감성적이고 미시적인 일상에 일희일비하는 그저 그런 이십 대였다.  

이제야 2000년 대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에쿠니와 일본 독자들이 생각하는 에쿠니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아동문학에 천착해온 작가라는 점을 나는 그저 작가 정보의 일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을 읽은 후 책장에 꽂힌 에쿠니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내가 간과해 왔을 뿐, 아동문학과 에쿠니가 가지는 접점이 그녀의 작업 전반에 있어 주요한 일면이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쿠니는 사실 에세이이고, 그 다음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이야 어떠하든 어른들의 일상을 다룬 소설이다. 시나 아동 문학 작품들은 그 외의 범주에 들어가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입맛이 남다를 것이 없는지, 그런 계통의 작품들은 국내에 번역되는 경우도 드물다. 예를 들어 딱히 어린이를 위한 작품은 아니지만 아동문학적인 색채를 띈 작품 중 하나인 '나의 작은 새' 같은 경우, 다른 소설이나 에세이들에 비해 자주 꺼내보지 않는 편이다.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은 굳이 분류하자면 '나의 작은 새'와 같은 군에 속할텐데, 아동 문학의 어조로 어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러나 에쿠니가 그리는 이야기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그녀의 심플하고 세련된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기기는 어려운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은 고급 양과자점의 구움과자들 같다. 심플한 재료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성과 일정한 노련함을 들여 구워낸 과자들. 달걀과 버터, 밀가루와 설탕에 기대할수 있는 맛을 낼 뿐이지만 얼마간에 한 번 씩 궁금해 질 때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2013/10/18 15:10 2013/10/18 15:10

잡동사니

from Le Signet 2013/03/19 05:20

남편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다. 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때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주고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받았다. 고작 다섯 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고작 그 다섯 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몸을 섞고, 낮이고 밤이고 말을 섞고,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더한 속박을 바라고 소유를 바라고 질투와 말다툼을 바랐다. 서로를 모조리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바라고 그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도 바랐다.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미로움을 바라는 것과 거의 같은 크기로,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했다. 서로 모든 것을 주고, 받은 것 전부를 맛보기 위해.
 --- pp.160-161, 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호의와 경의.


요즘 드문드문 스스로 묻는 물음에 대한 그녀 나름의 대답을 아직 사 읽지도 않은 책 소개 페이지에서 만났다.
무수한 폄하에도 늘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온 내 애정에 대한 답가를 받은 듯 하다.  

2013/03/19 05:20 2013/03/19 05:20

하루키의 에세이는 좋아한다.
요즘 그의 "잡문집"을 읽고 있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적어둔다.

...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가지 듭니다.

-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잡문집>/무라카미 하루키

공교롭게도, 아쉽게도, 이 부분의 번역이 매끄럽다고 보긴 힘들지만,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그의 에세이가 좋은 건, 나 역시 저 '가치판단의 축적'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인가보다.
나름의 가치판단 대상을 가졌다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2012/09/29 06:11 2012/09/29 06:11

왜 안돼?

from Le Signet 2008/12/21 14:04

1

'그물망에 걸려 몸을 꼬았다 풀었다 하는' 물고기라는 구문을 읽고 내가 떠올린 물고기의 움직임과
'그물망에 걸려 몸을 퍼덕거리는' 물고기의 움직임은 달랐다.

현대 문학에서 문학적 파격을 허용하는 장르는 이제 시, 운문 문학에 국한 되지 않는다.
비문이 아닌 한에야 '꼬았다 풀었다'와 '퍼덕거리는' 이라는 표현은
작가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표현 망 안에 속하지 않을까?

매끄러운 문장이 지니는 세련된 아름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세상 모든 작가들이 매끄러운 문장을 구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된 목소리로 '악문'들을 이어 불편한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도 분명 글을 쓰고,
어색하고 불편하되 재능이 담긴 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그 글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사포질이 덜 된 거친 이야기는 문학 출판사의 곁 가지에서 그에 꼭 맞는 자리를 찾아
세상에 나왔고, 열심히 한 마케팅과 이름 값 덕에 괜찮은 판매부수를 올렸을 뿐이다.


2

콘래드는 폴란드 인이지만 스무살에 배운 선원 영어로 로드짐을 썼고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인이지만 배운 불어로 대머리 여가수를 썼고
아일랜드 출신의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불어로 작품들을 썼다.
대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어대지 않더라도
스위스인 데이비드 조페티는 배워 습득한 일어로 '처음 온 손님'이라는 소설을 썼고
그 작품은 괜찮은 반향을 얻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콘래드의 문장은 완벽하지 않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다시 없다.

예술로서의 문학은 작가가 베틀에 앉아 문장이라는 실낱을 종횡으로 엮어 짠 비단이다.
비문과 악문은 분명 엉킨 실타래요 코를 빠트린 뜨게질감이다.
잘 짠 옷감과 넝마를 구분하는 것은 문학하는 사람의 기본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큰 그림과 그 속에 들어있는 진정성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숨어 꿈틀대는 재능의 기미를 대중은 밟고 스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돋울줄 아는 것이 글월을 배워 글월로 밥을 버는 사람들의 소임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기성 작가들과 평론가들은 젊고 까끌까끌한 문장을 향해 덜 히스테릭하고 더 진지한 태도를 보여줄 여력은 없는 모양이다. 젊은 재능 향해 짖어대는 늙은 히스테리.
좀 더 분명한 '악문'을 끄집어내 그런 문장이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를 일러주었더라면 반가웠으련만.

더군다나 총대를 맸으면 시원하게 쏘고 말 것이지 '제도권 문학의 화끈한 고객 만족의 부재'를 들먹이며 한 발 빼는 자세는 또 뭔가.
문학의 고객만족이라. 그것도 화끈한 고객 만족.
분발하라 압구정 작가들이여.


3

나 역시, 건투를 빈다.
그에게도 내게도.

일기장, 블로그에나 써야 마땅한 어설픈 칼럼을 쓰는 이땅의 모든 평론가들을
시원하게 할퀴어 줄 수 있는 글을 써 낼 수 있기를.










   
2008/12/21 14:04 2008/12/21 14:04

야밤의 하이쿠 잡담

from Le Signet 2008/12/15 02:02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는 흔히 꿀벌에 비유된다.
몸집은 작지만 꿀과 침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읽으면 따끔하면서도 달콤하다는 것이다.

- "하이쿠와 유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에 쓰인 신경림 시인의 추천사 가운데서


따끔하고도 달콤한
꿀벌같은 작은 글.








*

하이쿠와 동류의 일본 전통시들이 주석에 주렁주렁 매달려 추리에는 집중하기가 영 힘든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을 저녁 내 읽었다. 그리고
올 여름에 종로서 충동구매하고서는 방바닥 책꽂이 -> 그 근처 방바닥 -> 앉은뱅이 책상 위로 온 방안을 굴러다닌
"하이쿠와 유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과 눈이 맞았다.

아 정말, 나는 게으르고 멍청한 운명의 노예인가보다.
생각없이 빌린 추리소설과 생각없이 사들인 그림책이 반년만에 이토록 완벽한 세계가 되어 나를 이끌다니.
골라놓은 책 열권의 맨 밑에 깔려있는 걸 꺼내 책장을 스르륵 넘겼더니,
화투는 못쳐도 동양화는 아름답구나.

일단 이 책부터 밑줄 그어가며 읽기로 결심했다.


역시
마음에 드는 책은 방바닥에 굴리더라도 일단 지르고 보면 인연이 된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얻었다.


2008/12/15 02:02 2008/12/15 02:02


'T.S. Eliot 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지, 그건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웃었다.

내가 웃은 걸 무덤 속 엘리엇이 알고 벌떡 일어났나보다.
1일부터 31일까지 나의 지난 한 달은 공부든 일이든 전방위로다가 구석구석 끝내주게 잔인했고
그 잔인한 5월에 꼭 붙들린채, 나는 오로지 그 시간을 버텨내기위해 애를 썼다.

그러고 났더니 남은 건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일상.  진정, 5월 한 달간 한 게 없다.
운동도 꼬박 한 달동안 빼먹고 공부도 안했다.
더 기가막힌건 5월 한달내내 본 책이 고작 세 권이라는 사실.

어쨌든 월말이고 정리는 해야겠기에 하는 포스팅. 심히 부끄럽다.
어쩌자고 그렇게 막 살았단 말인가.


1

La petite bijou
- Patrick Modiano

작년 여름, 라호셸을 떠나던 무렵 민언니에게 얻은 책.
민언니가 좋아하기도 했고, 최근에 선생님께서도 뮈소와 함께 읽을 만 한 작가로 권하셔서 반가웠다.
모디아노도, 가발다도 편안해서 좋아한다.
불어로 읽는것도 힘든데 글까지 삐죽삐죽이면 참 못마땅하거든.
홀랑홀랑 넘어가는 번역본들을 두고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꽤 쉽게 읽혔다.  

예전에 이 책을 살짝 읽다 말았을땐 몰랐는데, 분위기가 참 좋은 작품이다.
사실 이런 과거에 쩔쩔매는 주인공, 이야기 모두 난 참 별로였는데 말이지.
'엄마 찾아 삼만리' 같은 골자는 둘째치고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과 걷는 거리의 이미지가 좋았다.
그래서 읽다보면 파리가 그리워진다. 특히 그 싫었던 샤틀레나 별 감흥 없었던 알레지아 같은 동네가.
요즘처럼 떠나고 싶은 때엔 읽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젊은 불문학도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한데,
읽어보면 왠지 젊은 사람들에게 잘 맞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본도 있다. '작은 보석' 이라고.
찾아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 소설에 관심있는 이라면 읽어볼만 하겠다.


2

Cooking for Mr. Latte.
-Amanda Hesser

서울시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모두 뒤져 찾아낸 한 권.
2004년 작이 올해 번역되어 해외주문을 넣어도 원서를 찾기가 좀 성가신 상태였지만
분명히 예전에 수입이 된 적이 있었던 책이라 뒤지면 분명히 걸려들거라고 믿었다.
 
커버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살짝 들린채로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용 자체는 대단할게 없지만 각 장의 에피소드들이 대체로 무척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게다가 귀여운 레시피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있어 궁금할때면 쏙쏙 빼서 써먹을 수도 있다.
그래,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 이런 책 진짜 좋아한다.
걸리기만 하면 무조건 다 산다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못 구하는 경우, 해외주문도 서슴치 않는다.

사건이나 긴장관계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장 한장 조곤조곤 읽어가는 재미가 있고, 먹기 좋아하는 따뜻한 주변사람들과의 이야기와 더불어
음식에 감각이 없을 뿐, 지적이고 온화한 남자친구(!)와의 순조로운 러브스토리로 채워져있다.
막판 감동은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즈의 자두시.
무척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고 이 소설에 참 잘 어울리는 축시라 읽고나서 혼자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었다.

한가지 팁.
작가가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했는지 영문 텍스트임에도 불어 단어가 난무하는 편이다.
미국인이라면 오히려 친숙할지도 모르지만 불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는
그리 편안한 원서는 아닐 듯.

그래도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대안은 번역서다.
올해 '미스터 라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나름대로 레시피 번역과 검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한 사람에게 따로 맡기고 검수도 한 모양이니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번역서를 읽어보진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역서를 읽는 편이 두배는 편안할 것 같다.
 

3

미학 오디세이 2
- 진중권

이 책, 정말 질리도록 오래 붙잡고 있었다.
왜 읽느냐는 질문도 무지 여러번 받았다.
답은 그냥. 문학전공했다고 맨날 문학만 붙들고 있는것도 아니고,
의외로 주변에 미학이나 예술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런 편도 아니다.
어쩌다 그 유명한 미학 오디세이를 한 권 구해서, 그것도 평소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마그리트가 주제라
읽은 것 뿐이다. 다 읽고나니 1권에서 다루는 에셔가 훨씬 신기해져서 1권도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본격적인 '서양미학'에 관한 책을 살짝 맛보고 난 소감은,
흥미롭기는 하나 역시 내 분야로 삼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는 것.
학교 다닐때 예술학 복수전공을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애초에 본능대로 영문학 하기를 잘했다는 결론이다.
남이 할 때 좋아보이는 걸로 됐다. 예술학이라 부르든 미학이라 이르든.

하지만 미학에 철학, 언어학과 문학이 함께 만나는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지금이야 학문들이 서로 미끄덩거리며 따로 놀고 있지만, 결국 서로 무엇하나 버릴 게 없더라는 이야기지.
말 많은 진중권교수지만, 그 실력과 내공은 인정하고 들어가야겠다.
한 학기 내내 봐도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교수'들을 여럿 보며 대학을 다닌 바,
이렇게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자신의 전공 분야를 말랑말랑하게 설명해내는 실력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2008/06/02 14:36 2008/06/02 14:36

And so on

from Le Signet 2008/05/24 11:40


1

...
현지조사자는 매사에 흥미가 많고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 관용적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고 남을 존중할줄 알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다른 사회에서 온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지 조사자가 된다는 것이 곧 '현지 사람이 되는 것' going native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크레인 앙그로시노 1996)

- 처음 만나는 문화 인류학


아이덴티티.
정체성의 유지, 혹은 고수는 문화 인류학자가 아닌 평범한 여자애의 일상에서도 퍽 중요한 문제.
내가 나여야, '그들'을 볼 수 있는 것.

아직 내게 몇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할 그 언젠가의 일상속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나름의 꼬장꼬장함.


2

타자를 바라 보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 인류학도,
종국에 비추어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참 서양 학문다운 메카니즘.
 
다만,

결국 끝은 나에게로 돌아옴. 이더라도.
그 돌아온 나는 분명 처음과 다르다는거지.

참으로, 탁월한
문화인류학과 연애의 닮은 꼴

 

3

얼마전 타블로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 똘똘이 스머프의 참한 한마디에 흐뭇.

' 튕기든 안기든 자기 생각이 있는 여자가 좋아요.'

안기는 그녀를 생각없다 생각하는 그이들,
튕기는 여자와 주관있는 여자를 헛갈리는 자기들,
주의하세요.



2008/05/24 11:40 2008/05/24 11:40

This is just to say

from Le Signet 2008/05/22 00:23


This is Just to Say  

- William Carlos Williams

I have eaten
the plums
that were in
the ice box

and which
you were probably
saving
for breakfast

Forgive me
they were delicious
so sweet
and so cold


각종 레시피가 책의 1/3 을 차지했던 사랑스러운 소설의 마지막에 참 잘어울리는,
주인공의 결혼식에 등장한 축시.

비교적 최근에,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며 읽었던지라 금방 다시 찾아읽었다.  
나는 '자두시'라고 부르는 , 'This is Just to Say'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이 시까지 마저 찾아읽고 나니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내 시원한 자두를 한알 깨문 듯 청량한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쌍을 이루는 일이 쉬울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서로 이뻐하며, 미워하며 함께 이룬 일상속에서,
어느 날 한 사람이 남겨둔 자두 한 알을 홀랑 먹어버린 다른 한 사람이
그 자두 참 달긴 하더라며 장난스레 끄적거린 몇자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커플이 주고받은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이유'도 가관이었지만,
사랑에 가슴 아픈, 혹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서 베껴 올리고 싶은 마음은 꾹 참고
대신 'This is just to say'의 번역으로 마무리.


다름아니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장영희 번역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내가
먹어버렸다오

아마 당신이
아침식사 때
내놓으려고
남겨둔 것일텐데

용서해요, 한데
아주 맛있었소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2008/05/22 00:23 2008/05/22 00:23

_ short conversations

from Le Signet 2008/05/07 14:42

1

As everyone filtered in, Mr, Latte poured kir royales and offered cheese balls.
He scored major points for his hosting abilities.

-  From "Cooking for Mr. Latte"  




2

"네일이라도 받으러 갈까?"

'...... 오빠는 옆에서 뭐하구요?"

'뭐 난 옆에서 파라핀이라도 받지 뭐.'

"......."

"그러고 보니 나도 받으면 예쁘게 나올것 같긴 하다"

- 어린이날, 거리에서.




3

"그 친구, 결혼하고 첫 아이 생긴 이후로 한 번도 못했대요"

"... 정말 'mac'이 필요한 경우네"

- ' mac' 과 'mec'의 차이를 설명했던 수업 후, 점심 테이블에서.



2008/05/07 14:42 2008/05/07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