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OLETTO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0:04
RIGOLETTO
/VERDI
OPERA BASTILLE
le 27 ja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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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에서 본 첫 오페라. 들어서는것 만으로도 순진한 마드모아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르니에의 화려함에 비해 1989년에 문을 연 현대식 극장 오페라 바스티유의 첫 인상은 조금 심심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티켓으로는 꼭 무대 어느 한 구석이 가려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가르니에와는 달리, 바스티유는 어지간한 티켓이면 시야에 무대가 다 들어오게끔 설계되어 가난한 학생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무려 '바스티유'에 설립된 극장다웠다. 브라보.

리골레토는 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상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인데다가, 유명하다 못해 멜로디만 생각하면 식상함까지 느껴질 지경인 아리아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을 비롯해 질다역을 맡은 적이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덕분에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아리아가 여럿인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Le roi s'amuse (환락의 왕)'를 바탕으로 하는 비극이고, 먼저 찾아봤던 영상물이나 공연들도 주로 그런 비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살린 연출이 많았는데, 파리 오페라는 그보다는 클래식하며 (아쉽게도) 선을 넘지 않는 점잖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여인들의 드레스가 스르륵 흘러 내리는 장면이나 붉은 쿠션이 층층이 쌓인 농염한 침대 신은 없었지만, 바리톤 제리코 루치치Zeljko Lucic는 '리골레토'의 리골레토에게 관객이 거는 기대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며 모두를 감동시켰다. 오페라 가수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놀라고, 나중에는 편안하게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공연 후에 찾아보니 이미 수차례 리골레토로 분했고 '우리 시대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찬사를 듣는 양반이었다. 역시, 고수는 무지몽매한 이의 눈과 귀에도 뭔가 다르다. 우리의 질다 역은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가 맡았는데, 안정적인 - 질다의 'Caro nome(그리운 그 이름)'를 듣고 있으면, 늘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그 곡을 부르며 관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소프라노는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 노래와 연기에 젊고 아름다운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에 비해 표트르 베찰라의 만토바 공작에게서는 큰 감흥을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역시 그가 부르는 'La donna e mobile'을 들으며 그 멜로디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샴페인을 한 잔 마실까 하고 바에 갔다가 한 무슈가 하겐다즈 바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넛 브리틀Macadamia Nut Brittle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이스크림 속에 캐러멜 토피가 묻은 마카다미아 조각이 들어있어 끈적끈적하고 맛있었다.

2012/02/16 00:04 2012/02/16 00:04
Tchaïkovski, Prokofiev
Vendredi 06 Janvier à 20H00 Salle Pleyel /Paris
PROGRAMME
Piotr Ilyitch Tchaikovski 
: Concerto pour piano et orchestre n°1
Serge Prokofiev
: Cendrillon (extraits)

Interprète
Mikhail Rudy, piano
Alexander Vedernikov, direction


'나는 여기서도 자 봤다' 같은 주제로 리스트를 만든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지난 금요일의 음악회를 꼭 넣고 싶다.

지난 금요일, 나는 수면 부족과 시험 망침으로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었는데 저녁에는 학기 초에 예매해둔 음악회가 있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갈까 말까. 프로그램이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라는 것 말고는 교향곡인지 협주곡인지, 누가 나오는지 나와서 뭘 연주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티켓 끊어놓고 늘 이렇게 무성의한 건 아니다. 여튼 마구 끊을 때는 언제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빼먹느냐는 마음 속 무서운 언니의 힐난에 침대 속에서 늘어진 몸을 일으켜 플레이옐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홀에 사람이 굉장히 많은 건, 평소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내가 좀 늦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싼 티켓을 산 나는 지난번에 앉았던, 맨 꼭대기 맨 뒷자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자리보다도 훨씬 위의 지붕 아래 난간과 의자 사이에 쳐박혔고 내 앞으로도 뒤로도 사람들이 꼬깃꼬깃 다리를 접고 앉아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오늘 좀 이상하네.' 그리고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단 1초만에 알았다. 아. '빰빰빰빰'이로구나. 클래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텔레비전 보급률이 50%를 넘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그 차이코프스키'.

안심했다. 아, 다행이다. 적어도 졸지는 않겠구나. 아는 곡을 들으며 자는 일은 없다. 나는 확신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간중간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왜 저 아저씨는 피아노를 저렇게 대충치나 원래 저런 스타일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뮤직France Musique 이 재방송해준 공연실황 녹음을 들으니 내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잠에 취한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러한 집중력 극 감퇴의 상황에서도 피아노를 그냥 쓰다듬는것 같은데 피아노가 노래하는 듯 한 소리를 내는 루디Rudy 아저씨의 연주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사족을 못쓰는 '노련미'는 기본으로 탑재하셨고 내가 상상하는 러시아의 서정 - 잘 모르지만, 차이코프스키만을 생각한다면,- 이 반짝거리는 낭만적인 연주였다. 확실히 젊은 연주자들이 또박또박 치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확하면서도 더 많은 감흥을 이끌어내는 그런 소리는 진부한 말이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 루디 아저씨의 연주에 감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무려 1악장이 끝나고 한 두 사람이 아닌 청중 전체의 박수가 터져나와 룰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콘체르토가 끝나고 인터미션이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집에 갈까 말까. 차이코프스키를 듣는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프로코피에프는 보나마나 숙면이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이나 좀 읽어 볼 것이지. 나는 이렇게 성급하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었으니 앞으로는 난간, 좌우로는 고상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틈바구니에 낀 그 날 따라 아무도 쉬는 시간에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누군가 일어났다면 나도 일어나 빠져나갔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콕 쑤셔 박힌채로 프로코피에프님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프로코피예프였다. 프로코피에프가 곡을 쓴 발레 신데렐라 가운데 여러 곡을 추려 연주해주었는데, 동생의 목소리를 빌어 '우와 대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앞 공연 때부터 라디오 프랑스 팀파니 오빠한테 반해있었는데, 거기다 못보던 귀여운 오빠들이 주르륵 나와 탬버린을 통통, 트라이앵글을 칭칭, 심벌즈를 촹촹, 북을 둥둥 쳐주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짱 재밌는' 소리들이 가득하면서도 역시 '러시아의 서정(...)'이 반짝거리는 멋진 곡이었다.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를 보고 나서 신데렐라는 봤으니까 이제 됐어, 라며 올 시즌에 걸렸었던 발레 신데렐라를 예매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했고 CD를 사리라 다짐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한 마담이 라디오 프랑스 스티커가 붙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멘 채 씩씩하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훅 반했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나면 연주가 끝나자마자 빛의 속도로 악기와 가방을 챙겨서 청중들 사이를 슥슥 지나 퇴근하는 단원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좋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태도에 생활미랄까, 직업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느껴져 멋지다고 생각한다. 가끔 하는 생각인데, 만약 내가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규칙적으로 연습하고 규칙적으로 공연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다. 물론 적지 않은 고충이 따르는 직업이지만, 역시 멋있다.



2012/01/11 04:38 2012/01/11 04:38

La Cenerentola

from Carnet de spectacle 2011/12/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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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체네렌톨라 / 로시니
La Cenerentola / Rossini
le 1 Dec 2011
Opera Garnier


파리에 오자마자 오페라 나시오날 Opera National 홈페이지를 주구장창 드나들었는데도 생각보다 오페라나 발레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도 훨씬 많고 티켓 가격대도 다양했지만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걸려있는 작품들은 이미 티켓이 없고 앞으로 걸릴 작품들은 예약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놓친 발레 라 수르스 La Source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그나마 인터넷 예매에서도 번호표 나눠주고 줄서는 식인 예약 시스템 덕에 빈약한 내 인터넷 라인으로도 예매는 가능했지만, 예매시간에 수업듣고 나왔더니 이미 인터넷 티켓은 전부 동이 난 상태. 절망해 있던 차에 극장 매표는 다음날부터라는 정보를 뒤늦게 접하고 다음다음날 오페라 가르니에로 쫓아갔다. 그리고 파리 마담들이랑 착실한 청년들 사이에 끼어 삼십분쯤 줄을 서서 표를 샀다. 야호!

가르니에는 오래된 극장이라 밤에 조명 켜놓은 외관만도 환상적이지만, 내부도 환상적이다. 나는 유럽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에 좀 둔한 편인데도 시공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게다가 또 한 번 분위기를 비트는 샤갈의 천장화. 타임머신, 뫼비우스의 띠, 시대착오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치 어느 지점에서 시공이 뒤틀린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극장이었다. 솔직히 음향은 새로 지어진 공연장들에 비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분위기는 경험해볼만 하다.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는 로시니의 작품인데, 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버전만 아는 상태였다. 메트로폴리탄은 뭐랄까, 마치 디즈니 신데렐라를 연상시는 연출을 보여주었는데, 그래서 이번 라 체네렌톨라는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의상이나 무대 모두 완연한 프랑스풍으로, 미국버전과는 아주 달랐다. 똑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두권의 그림책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미국풍과 프랑스풍은 이렇게 다르구나, 그 다름이 새삼스러웠다.
 
청중에게 쉽고 친숙한 오페라들은 많지만, 가수에게 쉬운 오페라는 아마도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스운 연기까지 해가며 그 어려운 곡들을 너무 쉽게 소화하는 가수들을 보며 그 노련함에, 그 노련미에 감탄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아름다움이 있지만 나는 '노련미'에 아주아주 약하다. 말그대로 훅, 하는 순간에 반한다. 너무너무 어려운 곡을 아주 편안한 얼굴로 심지어 웃어가며 연주하는 연주자interpreter나, 그냥 듣기도 벅찬 강연을 휘파람불듯 다른 언어로 따라가는 인터프리터 앞을 나는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랜만에 오페라를 봐서 그랬는지, 인간의 번뇌대신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시집도 잘가는 좋은게 좋은 이야기 앞이라서 였는지, 그날은 오페라 자체보다도 그런 부분이 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인터미션 내내 좁은 발코니 박스에 그냥 앉아있기 답답해 홀에 나갔다가 샴페인을 한잔 마셨다. 샤를 에이지엑Charles Heisieck 매그넘을 보는 순간 너무너무 목이 말랐다. 런던 로열 오페라는 아예 티켓 예약때 샴페인 예약을 함께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서비스가 참 좋다. 스놉이라 비난해도 좋다. 나는 오페라좌의 샴페인은 빵 위의 버터, 하얀 쇼트케이크 위의 딸기라고 생각한다. 황금 빛으로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서 마시는 샴페인 만큼 아름다운 감흥을 줄 수 있는 건, 발코니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트 차림의 연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2011/12/06 10:07 2011/12/06 10:07

vight cinq

from Bon voyage! 2011/11/27 06:02
médiathèque
메디아떼끄

체크아웃을 하고 남은 시간을 메디아떼끄에서 보냈다. 동생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나는 잡지와 요리책들을 뒤적였다. 그때 봤던 '프랑스 요리와 와인 Cuisine et Vin de France'에는 꿀 특집 기사가 실렸었다.
라 로셸에서 살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도록 나는 학교 도서관과 앞 뒤로 붙어있는 메디아떼끄에 들어가 볼 생각을 못 했었다. 외국 생활을 해도, 나는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찾아 볼 생각을 않는 애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만사 무심했다.
한 학기 뒤에 라로셸에 온 그녀 덕분에 처음 메디아떼끄 문턱을 넘은 이후로 나는 금새 메디아떼끄의 출석대장이 되었다. 여기서 푸투마요 프레젠트 Putumayo Present를 발견했고 친구들의 비웃음에도 불구, 어느날 갑자기 오페라 팬이 되었다. 천금이 생긴다면, 이런 멀티미디어 도서관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메디아떼끄, 라 로셸
médiathèque, La Roch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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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06:02 2011/11/27 06:02

vingt quatre

from Bon voyage! 2011/10/30 18:52
La Brûlerie
로스터리

닭이나 육류를 구워파는 구이집 옆으로 성냥갑만한 로스터리가 새로 생겼다. 가게 자리를 다 차지하고 서 있는 빨간 로스터 한 대가 차그락차그락 원두를 볶고 있었다. 고소하고 진한 냄새와 뜨거운 열을 확확 뿜어내면서.
지금이라면 분명히 커피 한 잔을 더 마셨을텐데. 에스프레소를 연달아 두 잔 마실 생각은 못하던 시절이었다.
 
라 브륄르리 뒤 마르셰, 라로셸
La Brûlerie du Marché, La Roch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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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0 18:52 2011/10/30 18:52

Yuki et Nina

from Le Cinéma 2011/05/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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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 et Nina
유키와 니나
/Hippolyte Girardot, Nobuhiro Suwa

어쩌다 프랑스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러다 이혼하게 된다면. 원치 않는 결말이지만,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키는 그런 상황을 겪는 '아이'다. 프랑스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가 이혼을 결정했고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래서 단짝인 니나와 헤어져야 하고, 생각했던 방학도 엉망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모야 어떻든 프랑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불어를 받아들여 말하게 되었듯, 그런 상황도 아이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소화를 시키든 얹혀 고생을 하든 아이의 몫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모습을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환상적인 터치로 그렸다. 프랑스인 감독과 일본인 감독의 콤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의 일례랄까. 미적이면서도 완전히 프랑스 풍이라 단언하기에는 담백하다. 마치 유키 역을 맡은 노에 삼피의 얼굴과, 그 아이가 입고 나왔던 깔끔한 풀색 티셔츠와 치마처럼. 그래, 그건 분명히 너저분하고 정신없는 - 잡히는 대로 주워입어서든, 조화는 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아하는 걸 둘렀기 때문이든 - 프랑스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디테일이였다.

후반부에 유키가 숲속에서 겪는 환상과 엔딩을 보면서 어쩌면 남성 감독들이 이렇게 여성적인 열쇠를 제시할 수 있었을까 싶어 놀라웠다. 두 감독이 게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게이는 남성을 좋아하는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니까. 나는 그 환상이 아마도 유키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때 엄마로부터 전해진 기억이 아닐까 생각했고, 영화 후반에는 그런 내 생각이 아주 터무니 없는 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폴리트 지라르도 감독은 일전에 빨간풍선이라는 작품에서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배우를 겸하고 있는 사람이라 연출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아시아 감독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는 모양이다.
2011/05/23 23:51 2011/05/23 23:51

Confessions

from Le Cinéma 2011/05/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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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白(2010)
고백
/中島 哲也 (なかしま てつや)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건 마츠 다카코 때문이었다. 마츠 다카코 만으로도 영화표를 살 이유는 충분했지만 극장 시간표와 내 일정의 엇박자 탓에 못보고 넘어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연이 닿은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KTX CINEMA 좌석표를 끊었다. 사실 표를 예매할 때만 해도 영화좌석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역에 가보니 아는 포스터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어 흥분된 마음으로 표를 바꿨다. 기회에 KTX CINEMA에 대한 소감을 한 줄 덧붙이자면, 화면이나 사운드 같은 기본 조건이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라 취향에만 맞는 영화라면 이용해볼만 한 서비스였다. 다만 화면과 가까울 수록 보통 영화관과 마찬가지로 목이 아프니 좌석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감독이 국내에서는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으로 유명한 나카시마 테츠야 라는 말을 듣고 좀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군데군데 익숙한 스타일이 묻어난다. 섬세하고 노골적이나 대단히 불편하지는 않다. 소설을 가지고 여러차례 작업을 해 본 감독인지라 밀도 높은 원작을 가지고도 균형이 잘 잡힌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감각적이면서도 마감이 잘 되어있는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원작을 먼저 접한 사람들로서는 이런 저런 아쉬움이 있겠지만 영화만 놓고 본다면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잘 찍었다는 평을 들을 만 하다고 본다.

이 작품을 보면서 굉장히 인상 적이었던 것은 감독의 혹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 시선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냉정한 스토리와 냉정한 시선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액자의 안과 바깥 만큼이나 다른 것이고,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범죄 소설이 가슴이 아플만큼 싸늘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뒤쫓아 감으로써 특유의 인간애적인 울림을 형성하고 있다면,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은 싸늘한 이야기를 더욱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크게 거슬리지도 않는, 무난한 배우들의 연기와 그에 비해 강한 감독의 터치, 일본 영화 특유의 깔끔함이 어우러져 비교적 안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에 장르적 특성이나 자극적인 문구로 인해 큰 인기를 얻기는 어려웠겠지만 만듦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쉬리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국내 성공작들이 하나 둘 씩 해외 상영관에 걸리던 90년대, 한국 영화계는 헐리우드에 잠식당한 제 3세계 영화계 - 혹은 일본 영화계-를 은근히 비꼬며 한국영화의 높은 극장 점유율을 자랑했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진정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대기업 자본중심의 투자 배급 시스템, 상품으로써 손익분기점에 목숨걸 수밖에 없는 제작 환경, 젊은 영화인들의 재기발랄한 시나리오 대신 이미 성공한 시나리오 손질해 우려먹기 라는 순차적 악순환의 고리는 2011년 한국 영화계를 더 이상 매력적인 작품을 낳지 못하는 불임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고질적인 문학적 토양의 빈곤 더하기 시나리오 작업을 연출의 부업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감독들의 독야청청 제왕의식이 눈 밭에 서리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문화부 장관부터 팬픽 쓰는 중학생까지 원 소스 멀티 유즈를 부르짖는 오늘날 한국의 영화산업이 생산해내는 '상품'들은 더 이상 '메이드 인 재팬' 라벨을 우스워 할 수 없는 심난한 모양을 하고 있다. 
2011/05/10 19:22 2011/05/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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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itizen Kane, 1941 (시티즌 케인) / Orson Welles
DVD를 사놓고 보다 자고 보다 자기를 반복했었다. 이번에도 결국 보다 잤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추천하고 값이 매우 싸다는 이유로 주문해서 쟁여놓고 제대로 못 본지가 한 오백년이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보지 못했다.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는 건 알겠지만 내게는 죽도록 재미가 없다. 언제나 'Great Gatsby'를 떠올리며 떨떠름한 기분으로 DVD를 꺼낸다. 그냥, 'Great Gatsby'를 다시 보는 게 내게는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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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raserhead, 1977 (이레이저 헤드) / David Lynch
이제 '린치 필름'에는 미련이 없다. '이레이저 헤드'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기하고, 흥미로운 영화였다. 사실 지금까지 '린치 필름'은 내게 늘 그런 인상을 남겼다. 어떻게 머릿 속에서 저런 게 나오나 싶은, 궁금해서 한번 쯤은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판타지. 유랑 극단의 기괴하고 신기한 그림자 인형극을 보는 기분. '시티즌 케인'처럼 죽도록 졸렸던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재미라는 것이 없는 쪽도 아니었다.
하지만 데이빗 린치가 아직 살아서 충분히 엿볼만 하고, 엿보고 싶고, 점점 피곤해져도 아주 끊기는 아쉬운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과거로 회귀해 그의 옛 작품을 더듬고 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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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Vampires Suck, 2010 (뱀파이어 석) / Jason Friedberg, Aaron Seltzer
뮌헨 중앙역에서 우연히 'twilight'의 패러디 물 'nightlight'를 접한 이후로 두번째로 접한 트와일라잇 사가의 패러디 물이다. 일단 좀 진지한 감상으로 시작하자면 돈을 들여 이렇게 완성도 높은 패러디물을 제작해 자국 내에서 깔깔깔 충분히 소비한 후 푼돈이라도 이역만리 한국의 IPTV 사업자에게 그 컨텐츠를 팔수 있는 미국의 영화 산업이 부럽더라.
'Belle Goose'나 'Edwart Mullen'처럼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설정으로 웃기는 방식은 'nightlight'에서도 충분히 활용했지만 초반 이 영화를 끄지 못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때문이었다. 벨라 대신 '베카'로 분한 젠 프로스키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벨라' 연기를 사정없이 흉내내는 장면들은 텍스트 패러디에서는 얻기 힘든 종류의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해 주었다.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을 내 친구들이 안다면, 장담하건데 나는 적어도 백년어치의 비웃음을 사게 될 테지만, 트와일라잇이 좋다면 한 번 쯤 봐도 좋다. 이 블로그를 드나드는 트와일라잇 사가의 팬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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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at Pray Love, 2010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Ryan Murphy
원작이 상당한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읽었고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점에서 영화판 페이퍼 백이 나오기 전의, 귀여운 표지의 페이퍼백을 자주 봤지만 한 번 표지를 들춰본 적 조차 없다. 아마 'Pray'라는 단어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소위 '자기 개발서' 범주에 들어가는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인줄 알았다. 언제나 소설 섹션에 놓여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던걸 보면 인간의 선입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어쨌든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내가 원작 소설의 표지를 보고 가졌던 선입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도 초반 1/3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편은 매력적이겠지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못했다. 소스는 좋았을지 모르나 그 결과물은 킬링 타임용으로 쓰기에도 망설여지는 수준이다.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원작자와 감독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제 아무리 줄리아 로버츠라도,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도, 현실과 허구 사이를 잇는 통찰과 균형의 고리가 결여된 이야기에서는 빛나지 않는다.

2011/03/05 21:54 2011/03/0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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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Ocean's Eleven, 2001 (오션스 일레븐) / Steven Soderbergh
크게 흥행한 할리우드 필름들 중에는 본 작품 보다 안 본 작품들이 더 많다. 딱히 싫어하거나 피하는 건 아닌데 평소에 블록버스터류가 극장에 걸려 있는 걸 보고 혼자서 '이걸 보러 가야겠어.' 하고 마음을 먹는 일이 드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매트릭스 시리즈, 배트맨 시리즈, 오션스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해놓고 겸연쩍어진 적이 각각 한 번 씩 있다. 아주 예전에 매트릭스 시리즈 1편을 본 기억은 있지만 보면서 집중하지 못했던 기억만 남아있고 배트맨 시리즈는 비교적 최근에 다크 나이트를 재밌게 봤다. 그리고 드디어 오션스.
사실 이번에도 아빠와 함께 보려고 골랐던 것인데, 유머와 설정을 적당히 이용해 잘 고안해낸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아빠는 빠른 전개와 빠른 자막에 피곤해 하셨다. 조지클루니도 브래드 피트도 줄리아 로버츠도 모두 매우 좋아하는 배우들이지만, 내게는 "cruel intense"나 "up in the air"의 조지 클루니, "Legends of the fall"이나 "Interview with the vampire"의 브래드 피트, 그리고 'Notting hill'이나 'closer'의 줄리아 로버츠 쪽이 훨씬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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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Letters To Juliet, 2010 (레터스 투 줄리엣) / Gary Winick
이 영화의 대외적인 관전 포인트는 아름다운 베로나의 풍광과 거의 원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만다 사이프리드겠지만 개인적인 관전 포인트로는 클레어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짱 우아한 헤어스타일, 빅터 역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귀여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찰리 역의 크리스토퍼 이건의 의상(!)을 꼽겠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처음 등장하는 씬에서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 엄마는 너는 동양인이기 때문에 저런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냉정하게 말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머리숱 만큼은 자신 있기때문에 잘 관리해서 60이 넘으면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주로 평균 이하의 인품과 평균 이상의 똘끼를 지닌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는데도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별로 좋아한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나와주면 이상하게 반가운 배우랄까.
그리고 찰리의 스타일. 나 이 남자애 말고 옷에 홀딱 반했다. 반바지에 폴로셔츠만 입어도 예쁜건 좋은 옷걸이 덕일지라도 영화 후반 결혼식 장면에서 찰리가 입은 수트는 정말 홀리holy했다. 그런 눈요기를 위해서라면 뻔한 로맨스도 진심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 아니, 그런 눈보신이 있기 때문에 뻔한 로맨스도 즐거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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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teel Magnolias, 1989 (철목련) / Herbert Ross
'steel Magnolia', 'irone butterfly'라는 영어 표현을 좋아한다. 둘 다 신문 정치 면에서 쓰이는 일이 많지만 그보다는 단순하게 영어의 풀 안에 들어있는, 이름도 뜻도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필름이었다. 1980년대 루이지애나의 작은 타운을 배경으로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생활미있게 그렸다. 90년대 초반 비디오가게를 들락거리며 영화를 봤던 사람들에게 무척 익숙할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고, 깜짝 놀랄만큼 젊은 줄리아 로버츠와 킬빌의 무서운 언니 대릴 한나의 청순하던 시절도 엿볼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먼저 본 '아메리칸 퀼트' 같은 스타일이랄까. 요즘에는 좀처럼 찍지 않는, 찍어도 한국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아메리칸 드라마'라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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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Salt, 2010 (솔트) / Phillip Noyce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열심히 구상한 시나리오, 은은한 돈냄새를 풍기다 부러지고 깨지고 폭발하는 소도구 대도구 촬영 세트,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될까 고민했을 감독의 성실함, 그리고 주연 배우 혹은 스턴트 배우가 대신 겪었을 각종 궂은 꼴이 러닝 타임 내내 분명히 전해지는 영화들.
들인 공이 아깝게도 그런 영화 중에 열에 일곱은 재미가 없다. 나머지 셋에 대해서는 주로 '볼만은 하다', '잘은 만들었다', '진짜 고생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열 모두 매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매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를 원 톱으로 내세운 '솔트'는 '나머지 셋'에 속하는 영화이긴 했다. 그러나 얼음물에서 기어나와 혹한의 숲속을 헤치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졸리를 뒤로 한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 속편 제작을 향한 감독과 졸리의 열망 혹은 염원 - 앞에서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2011/02/26 19:26 2011/02/26 19:26

돌아온 남부 소파 감자 코으네의 신년맞이 필름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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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lephant Man, 1980 (엘리펀트 맨) / David Lynch
2007년 어느 주말 밤 아르테arté를 켜놓고 뜨뜻한 침대 속에서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며 다시 보기. 평소엔 '데이비드 린치' 하면 '환상'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품고 말게 하는 것은 - 그가 보여주는 환상 속에 고여있는 '추악함'의 이미지들이다. 당장 밟아 죽여버리고 싶은, 더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추악함. 인간성의 추악함을 비틀어 감흥을 빚어내곤 하는 린치의 솜씨에 늘 감탄하지만 그 추악함에 대한 린치의 태도를 고뇌라 불러야 할지 조소라 불러야 할지 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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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lvira Madigan, 1967 (엘비라 마디간) / Bo Widerberg
대사가 없으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흐르는 영화. 1889년에 일어난 덴마크 출신 줄타는 소녀 엘비라 마디간과 귀족 출신 스웨덴 장교 식스틴 스파르의 치정 자살 사건을 영화화한 스웨덴 작품이다. 보 비더버그 감독의 67년작이 가장 유명하지만 찾아보니 1943년에 먼저 영화화된 바 있다.
개봉 당시 뛰어난 영상미로 극찬 받았고 조명과 촬영 기법, 영상 연출 면에서 중요한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텔 아주머니가 생선 포 뜨는 장면과 두 남녀 주인공이 거품을 내지 않은 새하얀 크림에 딸기를 담궈 먹던 장면, 그리고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안경 쓴 소녀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그 외에 묘하게 연극적이었던 부분부분과 아름다운 자연광이 에릭 로메르의 '로맨스 Les amours d'Astrée et de Céladon'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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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adies In Lavender, 2004 (라벤더의 연인들) / Charles Dance
이 영화를 보고 말도 못하게 영국이 그리워졌다. 시골 바닷가에 살고 있는 두 노자매 (매기 스미스, 주디 덴치)와, 어느날 그들 앞에 나타난 한 바이올리니스트 청년 (다니엘 브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자매의 잔잔한 일상과 청년이 그들의 마음에 불어넣은 훈풍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터치로 표현해낸 수작으로서, 주로 배우로 활동해온 잘스 댄스 감독의 안목과 재능에 크게 감탄했다.
다작에 유명한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전통이 강한 영국 중견배우 매기 스미스와 주디 덴치의 섬세하면서도 선이 살아있는 연기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니엘 브륄이 분한 안드레아의 바이올린 연주 역시 아름다운 바닷가 풍광과 어우러져 영화에 맛을 더했다. 포리지가 등장하는 아침 식사며, 일상적인 티 타임과 저녁 식사 등 생활미가 녹아있는 씬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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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vil Under The Sun, 1982 (백주의 악마) / Guy Hamilton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옛날 추리물이니 21세기 추리물들의 알쏭달쏭함이나 징그러움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 하기만 한다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기본적으로 아드리아해의 호화로운 호텔을 배경으로 그 곳을 찾은 온갖 화려한 인물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지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캐릭터 에르퀼 포아로 Hercule Poirot가 등장한다. 대화의 시작은 언제나 불어로 하며 노소를 불문하고 숙녀에게 상냥한 이 신사 아저씨는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또 젊은 제인 버킨이 보여주는 화려한 스카프 패션을 비롯해 남녀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이 볼만하고 매기 스미스 같은 중견 배우들의 팽팽하던 시절(!)도 감상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메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2011/01/19 23:53 2011/01/19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