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treize (2) 2010/07/09
  2. onze (4) 2010/05/14
  3. 2 days in paris (6) 2008/03/09

treize

from Bon voyage! 2010/07/09 23:38

Boeuf Bourgignon, Peach Melba
뵈프 부르기뇽, 피치 멜바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아르누보 풍 동그란 조명도, 옷가지와 짐을 올려놓는 금색 봉 선반도, 평범한 음식 맛도,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 위에 깐 종이 위에 계산서를 써주는 서버 아저씨도, 그리고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즈음 레스토랑 라벨이 다닥다닥 붙은 식당 문 앞에서부터 파사주 입구를 끼고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줄도. 이번에도 나는 동양인의 빠른 식사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식당을 나섰다.
사실 다시 찾게 될 줄 몰랐다. 어쩌다보니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 아는 -나 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 더하기 여행객들의 절반은 그 존재를 알고있을 - 식당이었고 우리는 더 나은 어딘가를 찾아 나설 생각이 없었다. 둘 뿐이었기 때문에 4인용 테이블에 합석해야 했다. 옆자리에는 대학에서 만난 아저씨와 아가씨가 데이트 중이었다. 슈크루트와 소세지, 생선 요리가 그들의 저녁식사였다. 무려 두 계절이 지난 지금까지 생판 모르는 합석 커플의 저녁메뉴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온 그 커플의 식사가 훨씬 늦게 나왔고, 아가씨가 주문한 생선요리의 뼈를 서버아저씨가 테이블 옆에서 매우 정성스럽게 발라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뼈를 발라 준것 까지는 매우 고마워했으나 다른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한 커플은 서버아저씨의 디저트 권유를 거절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전채로 버터 소세지를 나눠먹고 각자 뵈프 부르기뇽과 스텍 아셰를 주문했다. 뵈프 부프기뇽을 보는 순간 우리가 고기, 고기, 고기만을 주문했다는 점을 깨닿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다행히 동생은 나온 고기를 모두 먹었고 맛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하여 나는 안심하고 감탄했다.
디저트로 시킨 라즈베리 쿨리를 얹은 파 브루통 비슷한 과자는 단순히 맛이 없었지만 통조림 복숭아를 얹은 피치 멜바 앞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섭섭하고 서글프고 아쉬웠지만 달긴 달았다. 단순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단순한 통조림 복숭아.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건 카르트 도르 carte d'or 일까 아니면 매그넘일까 생각했다. 둘 다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에스코피에가 넬리 멜바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디저트는 수많은 바리에이션을 거쳐 2010년, 피치멜바를 피치멜바일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와 최후의 패턴으로 내 앞에 놓였다. 그것을 피치멜바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대중 피치멜바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샤르티에, 오페라
Chartier,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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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23:38 2010/07/09 23:38

onze

from Bon voyage! 2010/05/14 21:33

Breakfast, lunch, tea
아침, 점심, 차

 오페라 거리에서 몽마르트에 걸어 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파리는 작아서 중심지에서라면 어디든 쉬이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몽마르트는 늘 어디에 붙어있었는지 가물가물 했다. 언덕위의 사크레 쾨르 성당을 바라보며 고급 종이 가게 옆으로 작은 시트로엥과 르노들이 서 있는 골목을 걸었다. 과일 젤리와 계란찜 같은 연어 파테를 구경하며 헉헉 언덕 길도 올랐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생각하던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이른 아침에 점심 때 팔 당큰 케이크니 오렌지 파운드 케이크니 브레드 푸딩을 먼저 구워 내 놓고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토마토와 시금치가 들어있는 네모난 틀에 키쉬 반죽을 붓는 중이었다.
점심과 함께 팔리기 시작하는 케이크들은 구워서 한 풀 식히는 게 더 맛있고 식감도 좋다. 키쉬와 피자들은 구워서 점심에 맞춰 내는 것이 팔기도 편하고 맛도 있다. 사람들은 때에 따라 먹을 것을 사고 상인들은 때에 맞춰 먹을 것을 만들어 내놓는다. 아침에는 프티 카페와 크로아상, 점심 무렵 부터는 푸짐한 샌드위치나 샐러드, 간식거리들을 판다. 파리는 집 밖에서 아침 일곱시에 국수를 사먹거나 한 밤 중에도 서니 사이드 에그와 베이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일정한 리듬 사이의 아무 곳을 파고 든 우리는 역시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달달한 브레드 푸딩과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한 숟가락 떠먹고 찡그린 동생의 얼굴과 테이블 위에 수십개의 납작한 반죽을 늘어놓고 토마토 소스를 얇게 펴바르고 있는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아, 합리와 논리의 리듬으로 사는 프랑스 아니던가.  

로즈 베이커리
Rose Bak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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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21:33 2010/05/14 21:33

2 days in paris

from Le Cinéma 2008/03/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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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in paris
파리에서 온 여자 뉴욕에서 온 남자

줄리 델피 감독
줄리 델피, 아담 골드버그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집에 박혀있었다.
종일 우리집 자물쇠는 빨간 잠김 표시에 걸려 있었고
나는 살구색 바탕에 파란 꽃무늬가 그려진 극세사 잠옷 바지 - 우리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 를 입고 빈둥댔다.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젊은 여자가 하루종일 집에서 잠옷을 집고 빈둥대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으니
아, 참으로 관대한 인생이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영화도 내가 입고 뭉갠 바지처럼 말랑말랑 했다.
오랜만에 몇번이나 깔깔대고 웃었을 만큼 재미있기도 했고.
그야말로 매력적인 줄리 델피의 감각이 그녀의 자연스러운 불어와 영어 만큼이나 부러웠다.

미국인과 프랑스인처럼 재미있는 비교대상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영화는 낭만의 나라 프랑스가 아닌, 그 나라를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진정 공감할만한 유머로 가득차있다.
무려 '프렌치 시크'로 대변되는 '때로는 좀 지저분해 보일 정도의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자유연애'는
한 프랑스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당신이 지고 가야만 하는 십자가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빠리 쥬뗌 (Paris je t'aime) 도 그래서 좋았지만,
이 영화 속 빠리도 아코디언 소리나 센 강으로 무장하지 않은,
빠리의 민낯을 담고 있어 참 반가웠다.


2008/03/09 21:55 2008/03/09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