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 de mi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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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월의 책읽기 - 첫번째] 만화책보다 좋은 말랑말랑 소설들 2008/04/02



새 달이 돌아오기 전에 한 달동안 읽을 책 목록을 정하고
목록에 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기 시작한지도 벌써 세 달이 되었다.
네 권, 세 권에 불과했던 지난 1, 2월의 기록에 비해 이번 달엔 꼬박 열권을 채워 기분이 좋다.
그래서 이번엔 책 읽기 포스트를 네 꼭지로 나눠 정리해 볼까 한다.

2월에는 단 한권도 읽지 않았던 소설을 이번 달에는 한풀이라도 하듯 읽어댔다.
사실 읽은 책의 권 수가 늘어난것도 주 특기인 소설 읽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스무살이 넘고서 만화책을 대신해 즐겨 읽어온 것이 대중 소설들이다.
그것도 책이라고 읽고 있느냐는 뭇 '문학하는' 사람들의 무시에도 나는 이런 소설들을 사랑한다.
재미있고, 일상에 가깝고, 편안하다.
책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내게 이보다 더 좋은 주전부리가 있겠는가.


1

내일의 기억
-오기와라 히로시

예전부터 엄마가 보고싶어했던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동네 DVD 가게에도 들어오질 않고, 하나 TV에도 올라오지 않아서 DVD를 구하는 중이었는데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꿍하니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용산역에 가면 늘 들리는 플랫폼 헌책방에서 이 소설을 발견했다.
엄마드리려고 사긴 했지만 내가 먼저 읽고, 바쁜 엄마는 아직도 못 보셨다.

처음엔 살짝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분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차분함 너머에 자잘한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마치 해질녘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하고 애달픈 이야기가.
 
기억을 잃는다는 건, 조각난 내 자신을 한 조각, 한 조각 씩 잃어버리는 느낌이 아닐까.
알츠하이머라는, 현존하고 있는,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에 의해
한 인간의 자잘한 일상이 사그러져 가는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흔히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는 독자의 눈물샘을 짜내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런 구석 없이 시종일관 차분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 차분한 페이스로 가차없이 주인공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몇 번이고 도예교실 선생에게 젓가락 받침대의 소성비를 내는 사에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고
더 이상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채로 해질녘 산길을 걸어 내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서글프고도 아름다웠다.


2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 야마자키 나오코라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아오이 유우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올지, 기다리고 있는데 도통 기미가 보이질 않아 그냥 책을 먼저 읽었다.
놀라울만큼 얇고, 글씨도 큰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에도 이 소설이 불륜 소설인지, 유우가 무슨 역으로 나오는지
가늠도 못하고 있었다.

굉장히 비범한 작가, 비범한 소설이라는 비평은 좀 과하다 싶고,
그냥 킬링 타임 용으로 제격인, 읽고 난 후에도 불쾌하지 않은 불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분부분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글줄들도 있었으나
불친절한 나는 '이 정도 감각도 없이 대중 소설 작가를 할 수는 없지' 라며 심드렁하게 넘어갔다.

'나는 유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열 아홉살 남자아이의 적당히 자기 중심적인 사랑법이
신선했다. 보통 불륜 소설을 싫어하는 쪽이고, 불륜 소설에서 연상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지나치게
조숙하고 감상적이고 뭔가 고고한 인상을 주는 것이 늘 불만이었던 나로서는, 한 때에 지나지 않는
어린 남자애의 불장난을 그답게 그린 작가의 경쾌함이 마음에 들었다.


3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 에쿠니 가오리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을리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오만가지 쓸데없는 책들을 전부 가지고 있는 나는
이번에도 습관성 반, 호기심 반으로 이 책을 주문했다.
요즘 낼 만한 소설이 없는지 자꾸 옛날 에쿠니상의 단편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데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몇년 전부터 읽고 싶어하는 '장미나무 비파나무 영 몽 나무'나 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제비꽃 설탕절임.'
일본어만 제대로 읽을 줄 알았으면 진즉 원서를 샀을 소설들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가장 어이없어 하겠지만,
나는 '재앙의 전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가 옮겨온 벼룩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게까지 되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베드버그나 각종 알 수 없는 벌레의 공포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너무 공감 되서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와 작품, 독자(나)의 감정이 완벽하게 일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다들 웃겠지만.

사실 굉장히 좋았던 '쯔메타이요루니(차가운 밤에)'에 비교하면 좀 아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에쿠니상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왠지 80년대, 90년대의 그녀를 만나는 것 같아
새롭기도 하다. 소설의 완성도 보다도, 당시 덜 세련되고 더 신선한 에쿠니 가오리를 만난다는데
이번 단편집의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한 남자에게 빠지는 건 너무 힘들다며 이 남자 저 남자를 오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납득시키고,
게이 커플과 알콜 중독자 여자의 이야기를 상상초월의 방향으로 끌고나감에도
또 납득시키는 에쿠니 가오리의 무심하고도 섬세한 솜씨에 감탄했다.


4

곰의 포석
- 호리에 도시유키

언젠가 이책을 분명히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언제, 어디였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책에 관한 웹서핑 중이었는지, 삼청동 내서재에서 본 책 날개에서 였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는다.
아무튼 이 책을 샀고, 읽었다.

세편의 단편 모두 프랑스가 배경이거나, 프랑스와 관련이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프랑스에서 몇년씩 공부한 불문학자 - 게다가 빠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 -라서
작품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도 눈길이 갔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곰의 포석'을 읽던 중에 이 제목을 설명하는 라 퐁텐의 우화 부분을 읽고
사실 상상해보면 너무나 처참한 이야기임에도 박장대소 하고 말았다.
곰의 포석(le pavé de l'ours)이라는 말은
불어로 도와주겠답시고 한 일이 해가 되는 것을 말하는 표현인데,
라 퐁텐의 '곰과 원예가'라는 우화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외진 숲속에 외롭게 살던 곰이 꽃과 나무만을 돌보며 역시 외롭게 살던 원예가와 친구가 되었다.
곰은 사냥을 하고 늙은 원예가는 정원을 가꾸며 사이좋게 함께 살았는데,
곰은 노인이 낮잠을 자는 동안 파리를 쫓아주는 일도 했다.
어느날 성가신 파리 한마리가 노인의 코에 앉았고, 아무리 발을 휘저어도 쫓을 수가 없었다.
이 충실한 파리쫓이 곰은 파리 쫓기에 열중한 나머지 포석을 하나 집어들어 내던져 파리와 함께
노인의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계속해서 라 퐁텐의 우화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이리하여 추론에는 서툴지만 뛰어난 투수였던 곰은
그자리에서 노인을 즉사시켰다.
무지몽매한 친구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명한 적이 오히려 훨씬 낫다.

멍청한 친구의 위험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낸 라 퐁텐의 상상력이 기가막힐 따름이다.
그리고 그걸 숙어로 만들어 쓰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언어관도.

이어 '모래장수가 지나간다'라는 단편도 꽤 분위기가 좋았다.
모래장수가 지나간다(Le marchand de sable est passé)는 불어로 졸리다는 뜻의 숙어인데
솔직히 이것도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 단편을 보면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졸린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치고 여태 재미있는 작품을 못봤는데
이 작품은 나의 관심사에 부합해서였기 때문인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우리학교에 이렇게 젊고, 작품 활동을 하는 현직 작가에, 부지런히 번역도 하는 교수님이 계셨더라면
내가 학교를 6년은 다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마구 든다.
 


 

2008/04/02 16:09 2008/04/02 16:09